-
장병으로서의 고찰Life/Thinking 2019. 6. 7. 19:34
문득
근무서는 사무실에서 책을 읽다가, 딴 생각으로 빠지게 되었다. 과거 고3, 교회에서 졸업예배를 인도자로서 준비한 적이 있다. 소요되는 금전적 부분을 관리하고, 팀별 연습 일정을 잡고 기획하는 등 전체적인 것을 총괄하는 위치에서 주축이 되어 준비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어린 나이에도 그 역할을 어떻게 감당 했었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그 당시와 지금은 생각도, 관심사도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기에 느껴지는 바가 다르긴 하지만, 지금 다시 하라면 잘 할 수 있을까도 생각이 든다.
갑자기 왜 그런 기억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를 회상하다가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군대에 있으면서 예전보다 내 장점이나 긍정적인 능력들이 많이 줄어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으면 머리가 굳는 것 같고, 생각이 없어지는것 같은(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느낌을 받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유를 알면 조금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왜 사고가 감퇴할까?
1. 수동적인 사고방식
먼저,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생각과 행동이 수동적으로 변한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부터 옷도 정해진 옷으로, 음식도 정해진 시간과 주어진 음식으로, 잠도 정해진 시간에 모두 함께 자기 때문에.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특수한 곳이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과 역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명령 체계가 상하로 수직적인 조직문화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시키는 것만 하는' 매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판단해서 결론을 내리고 행동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고민조차 할 필요 없이 그저 시키는 것만 하면 되니까 당연히 사고하는 능력은 점점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2. 멈추어 버린 학습능력
우리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주입식이든 능동적이든 평생을 학습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왔다. 그것도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외우려는 노력과 반복을 계속 시도하면서 말이다. 12년의 초중고 생활 뿐 아니라 대학 진학 이후까지 그래오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20대 초반에, 우리는 가장 활성화 되어있고 많은 양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을 가지고 있으며 잘 돌아가는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 상태로 우리는 입대하게 된다.. 물론, 여기라고 새로운걸 배우고 학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에 비해 받아들이는 정보는 양의 차이와 질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일차적으로 대부분 융통성이라곤 허용되지 않는 환경과,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눈치보는 능력만 키워지게 된다. 창의적인 배움은 1도 없는 곳이며 '현명한 선조들의 지혜'와 같은 옛날 생각 보다는 '아직 버려지지 못한 구시대적 사고방식'과 같은 옛 생각을 아주 뼛속 깊이 경험하게 된다.
물론, 강한 정신력으로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을 다짐하며 자기계발에 힘써나가는 사람도 찾아볼 수 있다. 그치만 일반적으로는 매일 지치는 일상과, 체력단련을 한 후 개인정비 시간이 되면 자신의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버리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금상첨화로 요즘에는 개인 휴대폰도 일과 후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뚝딱이다. 이건 필자에게 해당하는 부분인데, 유튜브와 Facebook 등 SNS가 독이 되는 것 같다. 수용하는 정보가 대부분 영상이나 사진, 게시된 글 등의 시각적 정보이기 때문에, 보기만 하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TV가 한창 '바보상자'라고 불리게 되었던 이유가 바로 멍하니 보기만 하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지금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법이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지는데 한 몫 하는 것 같다.
3. 이기적인 사고방식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열악한 환경일수록 유대감도 끈끈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커진다고 생각한다. 연구 결과가 있는데, 애완견에 대한 복지가 많이 발전한 나라일 수록 잘 사는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앉으면 눕고싶고, 누우면 자고싶다고. 상대적으로 편할수록 자신의 이익을 더 챙기게 되나보다. 더 작은 것에 민감해지고 예민해지며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와 '자유'만을 외치려하는 분위기. '개인주의'라고 착각하며 내 이익과 편함만 쫒아 '이기주의'로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남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떨어지게 되고 성숙함 역시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리라.
그치만 개선의 노력, 혼자만으로 될까
능동적일 수는 없을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이 흔히 말하는 '발전이 없는 이유'중 하나가 그 사고를 탈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가라가 넘치며, 시키는것만 하고 그 이상 절대 하지 않는 뭐든지 '적당히'하자는 마인드이기 때문.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긴 하다. 열심히 한다고 무언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것도, 알아주는 사람도 전혀 없는 곳이기 때문. 하지만 나 자신이 발전하기 위해서, 아니 발전은 아니더라도 후퇴는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조금은 신경 쓸 가치와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속에서 최대한 스스로 생각해서 할 수 있는 만큼은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최소한 나한테 주어진 부분 만큼은 최선을 다해 완수하자는 마인드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앞서 말한 '개인주의'로 착각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한 분위기. 사실 이곳의 특수한 환경때문이 아니라, 안타깝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하나의 흐름으로 보이기도 하다. 그치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희생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피해는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서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작은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내가 편하고자 하는 이 행동이 과연 다른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를 한 번만 생각하고 행동하면 될텐데. 간단하지만 쉽게 지켜지지 않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계속 배우고, 공부하자
인생을 살면서 여기서만 경험할 수 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면 무엇인가는 배울 수 있을것이다.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더라도 군대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이고, 젊은 남자들이 한 번씩 겪어 나가야 하는 곳이다. 초, 중, 고 진학을 했다면 심지어 대학교 (성적으로 따지면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니까) 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과 지내며 생활한다. 하지만 이곳은 사는 지역도, 가치관도, 금전적인 계층도, 학벌도 각양 각색인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좋든 싫든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것도 같이 일하고 먹고 씻고 자는 것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말이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을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겪게 되는 것. 인생에서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기회를 통해 기존의 인간관계를 다시금 정립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살아가며 관계를 맺는 과정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 역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뿐만 아니다. 개인정비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을 활용해 여러 분야의 독서나, 자신이 필요한 공부를 할 수도 있다. 물론, 갓 전입 온 신병이 주특기는 배울 생각도 안하면서 매일 밤마다 공부하며 자기 계발에만 힘쓰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말 많은 눈치와 수군거림을 듣게 될 것이다. 그건 함께 생활하는 조직에 새로 온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도 아닐 뿐 더러, 이것이야 말로 '개인주의'가 아닌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주의'이다. 물론 이건 극도로 드물게 일어나는 흔하지 않은 경우이기에..
스마트폰을 '잘' 활용하자
일과 후 개인 스마트폰 사용이 허용되면서, 정말 생활하는 환경이 너무나도 좋아졌다. 핸드폰을 통해 쉽게 검색도 할 수 있고, 여가생활도 즐길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회와 소통이 단절되는 것을 막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점에 따라오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문제점이 생긴 것. 또,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같은 경우에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시각적인 정보만을 받아들임으로서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저하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스마트폰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그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의견을 서술한 두 책이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생각은 죽지 않는다' 라는 책이다. 앞선 책에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사람들의 집중력이 약해지고, 몰입하는 능력이 떨어져 글을 읽다보면 뇌가 제멋대로 문단을 뛰어넘고 내용을 대충 파악하고 넘어가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얕고 가볍게 만든다고 경고하는 것.
그에 반해, 두 번째 책에서는 기계로 인해 사람이 멍청해진 것이 아니라 뇌를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직접 정보를 기억하기보단 어디에 정보가 있는지 기억해서 검색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기계라는 도구를 이용해 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때문에 무엇인가 집중하다가도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을 확인하고, 그래서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멍청해지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어서는 두 책 모두 동의하는 바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논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기술 발전의 산물을 이용해 생산적인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는데 사용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도구'로 삼아 더 집중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를 한 번 더 고민하자.
전문성이 떨어질 필요가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군대라고 해서, 전문성이 떨어질 필요가 있을까? 물론, 이곳에는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니 노후된 장비도 많고, 비효율적이고 오래된 시스템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넘쳐나는 '가라'와 비전문성 가득한 일처리 방식등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오래전부터 이 특수 조직의 일처리 방식을 풍자한 내용이 있다. 미대생은 미술을 잘하니 축구 라인을 그리게 하고, 물리학과 학생은 궤도 계산을 잘하니 박격포병을, 토목학과 학생은 교량병을 하는 등 말도 안되는 전문성을 들어 각자의 보직을 배정받는것.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중요한 조직으로서, 나는 모든 일들이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문성을 살려 각자의 위치에서 활약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스스로 고민하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할텐데 그 가장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간부'가 아니라 '사람'으로, '폐급'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는 부족한 전우'로
군대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이 있다. '간부는 병사의 적이다' 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우스갯소리. 병사들 입장에서는 본인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간부이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다. 또, 같은 병사끼리라고 할지라도 기본적인 일처리 능력이라던가, 인간 관계속에서 눈치라던가 하는 전반적인 사회생활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을 보면 '폐급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며 생활한다면 계속해서 내 이익을 위해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의 잠재력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은 채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못 박아버리고 다른 어떤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사고는 한쪽으로 치우치고, 시야 또한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역지사지라는 말처럼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능력, 사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배우고 실천해야 할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내용에 대해 내가 정의해 놓은 소제목과 같다. 인식을 바꾸어 병사의 적인 '간부'가 아니라 그들도 계속 성장하고 배우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한명의 사람으로, '폐급'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는 남들보다 부족한 전우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편협한 생각보다는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고, 보다 더 성숙함과 공감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말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앞선 내용들을 정리하면, '인식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말이 쉽지.. 생각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바에 대한 결론을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이다. 보편적으로 인간은 변화보다는 안정성을 위해 기존의 것을 고집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생각' 또한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말을 바꾸고,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면서 다시 자신의 가치관이 정립되고 그것이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생각은 중요한 것이리라.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 참 많다. 의문을 가졌던 내용대로, 소수만의 인식으로 절대 변화될 것 같지는 않다. 너무도 안타까운 결론이지만.. 결코 변할 수 없는 주변 환경의 변화를 기다리기 보다는 그 속에서 나 스스로 전환점들을 찾아 나가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뭐, 어쩌다가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던 기억이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 긴 글로 이어졌는지 모르겠다만. 근무지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이었다.
결국, 전역이 답이다.'Life > Thin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대하고 지난 시간들 (0) 2019.03.10